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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들어지는 현대사의 비극 '형제복지원' 사건"(김용원 ...
"형제복지원은 지옥이었다. 폭력과 성폭행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무법천지였다. 아무 이유 없이 하루 종일 매를 맞는데 때리는 놈이 지칠 때까지 맞았다. 머리를 잡고 온 몸을 주먹으로 때리는 바람에 치아는 거의 다 임플란트를 한 상태고 목에 신경 손상이 와서 수술도 했다. 맞을 때의 공포와 사람들의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1975년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용됐던 지걸훈(60) 한둘코리아홀딩스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으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호에 의해 부산에서 운영돼 온 복지시설이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3월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져 시설이 폐쇄되기까지 무려 12년간 7만여 명에 대한 광범위한 인권침해 범죄가 이뤄졌다.
멀쩡한 사람들이 납치되다시피 끌려와 이곳에서 강제 노역을 당했고 어린아이와 여성은 성노리개로 이용당했으며, 열악한 의식주 상태와 폭행 등으로 513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가해자인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의 기소 혐의는 특수감금과 횡령에만 국한됐다.
당시는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민주화 바람이 불던 시기라 5공 정부가 이 사건이 또 다른 '뇌관'이 될까 우려했던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김용원 전 검사(현재 법무법인 한별 대표변호사)는 수사 초기부터 '수사를 하지 말라'는 윗선의 압력이 상당했다고 지난 1993년 출간한 책에서 밝힌 바 있다.
박 전 원장에게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을 포함한 총 6개의 죄목으로 기소돼 징역 15년이 구형됐지만 재판이 7번 진행되는 동안 박 원장의 형량은 계속 가벼워졌다.
결국 그는 '업무상 횡령'으로 2년 6개월형을 선고받는데 그쳤다.
피해자들은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고, 구타와 성폭행 등의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과 트라우마, 우울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직접 겪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 참혹했던 실상을 알리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싶다는 지걸훈 한둘코리아홀딩스 대표를 3일 만났다.
▲ 형제복지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
"때리는 놈들이 줄을 서있던 장면이 생생하다. 때리다 지치면 다음 사람이 또 때리는 방식으로 구타가 이어졌다. 앞 사람이 맞는 동안엔 눈을 감고 맞을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퍽퍽’ 사람을 때리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뒤엉키는 동안의 공포는 형언하기 힘들다. 사람이 짐승과 같은 울부짖는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 알게 됐다. 그나마 폭행과 구타는 형편이 나은 것이었다. 9~12살 되는 어린아이들이 오면 묶어놓고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성폭행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사람을 가스실로 데려가 죽였다는데, 형제복지원은 고통에서 벗어날 죽음의 자유마저 얻지 못하는 곳이었다."
▲ 1975년에서 1986년 사이에 확인된 사망자 수만 513명이라고 들었다.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1000명 이상이 될 걸로 예상한다. 대부분이 굶주려 죽거나 맞아 죽었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무자비한 폭력에 몸이 성한 사람이 없었다. 썩고 상한 음식을 주면서 그마저도 선착순 몇 명 안에 들지 못하면 밥 대신 모진 매질이 돌아왔다. 밥과 반찬이 역겨워서 삼키지 못하면 입을 억지로 벌려서 음식물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을 목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형제복지원에는 벌레와 생쥐도 한 마리 없었다. 굶주린 어린아이들이 그것마저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 끔찍한 사건을 겪었는데, 어떻게 영화로 제작할 생각을 하게 됐나?
"나는 1975년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수용됐었다. 동생의 도움으로 2~3개월 후 형제복지원에서 탈출해 언론사에 제보도 하고 실상을 알리려고 노력했지만, 당시엔 그 누구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겪었던 일이 30여년이 지나서도 생생하다. 그러니 그곳에 10년 이상 있었던 사람은 어떻겠나.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영화 ‘도가니’가 흥행하면서 장애인 인권 보호에 관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형제복지원 사건을 극화해서 진상을 알리고 ‘형제원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힌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다."
▲ 피해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
"그 때의 트라우마로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도 상당수다. 멀쩡하던 사람이 계속된 폭행으로 지적 장애를 얻은 경우도 있고 각종 질병과 우울증, 대인공포, 알코올 중독 등으로 아직도 고통 받고 있다. 또 형제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범죄자, 부랑아 취급을 받고 사회의 모진 냉대를 견뎌야 했다. 피해자인 이들이 영화를 통해 그간의 삶에 대해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 당시엔 그곳이 '부랑자 수용시설'로 알려졌었는데, 그곳에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20살이던 1975년, 친구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가 친구를 못 만나고 통금에 걸릴까 싶어 경찰서에 갔다가 '저 차 타고 가면 무료로 하루 재워준다'는 말을 믿고 차에 탄 것이 화근이었다. 형제복지원에서는 수용 인원이 늘 때마다 정부에서 보조금이 나왔기 때문에 9~12살 먹은 어린 아이부터 대학생, 스님 등도 마구잡이로 잡혀왔다. 가족이 찾으러 오지 않는 이상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 사건이 알려지고도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못했다.
"영화에서도 그 점을 자세히 다루고 싶다. 12년간 513명을 죽게 만들었는데, 이는 희대의 살인마보다 더하지 않나. 인권 유린에 대한 혐의 없이 '국가보조금을 횡령했다' 정도로만 처벌 받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더 많은 한을 안고 살고 있다. 몇 년 전 박 전 원장이 치매에 걸리면서 사과 받을 길도 없어졌다."
지난해 3월25일 '형제복지원 피해 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자 생활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 법안은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피해자에 대해 보상금과 의료 지원금, 생활 지원금 등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1년이 넘은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중이다.
▲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아직 처리되지 않았다.
"공소시효가 이미 끝나 형사처벌은 불가능하지만 사건의 모든 것을 낱낱이 밝히고 형제복지원에서의 인권침해로 사회생활이 어려운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한다. 민생 법안과 시급한 사안들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특별법이 영화를 통해 통과되는 그 날을 기다린다."
▲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완성됐나.
"피해자들의 증언과 직접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시놉시스와 시나리오가 나온 상태다. 물망에 오른 배우들을 중심으로 캐스팅 작업이 진행중인데, 올 여름 촬영에 들어가 내년 가을쯤에는 개봉할 계획이다. 독도 영화 '독도강치'를 제작한 김단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 영화는 흥행할 것 같은가.
"흥행 성공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의 오점을 알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드는 영화다. 배급사측에서도 시나리오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영화 수익의 일부는 형제원 피해자들을 위해 쓸 예정이다."

